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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솔로는 침통한 기분으로 마치 펼쳐놓은 책을 간단하게 훑어보며 넘기는 일처럼 그의 일생을 되돌아봤다. 그의 일생은 여태껏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변화하거나 강물이 그저 흘러가는것처럼 냅둬버리는 일생을 살아왔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일생에 고민을 할만한 일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 사건과 선택이 발생하더라도 결론은 항상 정해져있기때문에 고민이라는 일이 그의 일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그의 조용한 호텔룸으로 걸려온 전화 하나로 그는 일생일대의 커다란 뜀틀이 생겨나 버린것이다. 뜀틀의 결론은 하나다. 뛰어서 넘으면 된다는것. 그에게 간단한 일이다. 그는 그 뜀틀의 뒤로 양의 가죽을 얻어갈수 있었지만 뛰어넘고 싶지 않았다.

*

커다란 1인 쇼파위에서 생각하는 남자의 동상처럼 앉아있던 일리야는 손끝으로 체스 말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듯 만졌다. 솔로는 일리야의 손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날 개비가 솔로의 방으로 찾아와 그의 찬장에 고이 모셔둔 스카치하나를 꺼내어 잔에 따르곤 그것을 자신의 얼굴에 때릴듯이 휘저으면서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었다.

 

"처음에 거친 손끝이 먼저 닿았는데 너무 놀랬어요. 그리곤 얼음처럼 차가워서 더 놀랬구요. 고향에서만 느낄수있는 겨울처럼!"

 

솔로는 일리야가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었던 때를 기억해내었다. 서로를 잊지 않으려는듯 바라보는 둘의 모습을 떠오른 솔로는 그녀의 손에 있던 잔을 아주 자연스럽게 빼앗아들고서는 입으로 털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짜증내는 소리를 내었고 솔로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곤 일어나 공손하게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바닥에 벌레라도 죽일것마냥 문으로 걸어왔다.

 

"나폴레옹 솔로. 오늘 당신이 저지른 죄를 언젠가 씻을수 있으면 좋겠군요.아주 무례했어요."

 

그녀는 솔로의 손에 잡혀있던 문고리를 강하게 당기곤 부셔트릴 듯이 닫았다.

 

그 저녁이 떠오르자 또 알수 없는 감정이 그를 침식했다. 일리야가 폰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솔로의 시선은 다시 일리야에게 집중하였다. 그의 단정한 머리를 지나 완벽한 굴곡을 지닌 어깨를 따라 내려가 다시 그의 커다란 손으로 시선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일리야가 그를 바라보았다.

 

"뭘 말하고 싶은거지,카우보이?"

 

솔로는 그의 질문에 되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일리야는 그가 원하던 답변이 아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큰 키 덕분에 순식간에 방이 확 좁아져버려 솔로는 순간 방의 선택을 잘못했는지 의심했다. 일리야의 푸른 눈이 솔로를 향하고서는 그를 스쳐가 문밖으로 사라졌다. 햇빛이 맑은 날의 푸른 하늘 색이라서 솔로는 그 눈을 아주 좋아하기 시작할꺼라 스스로 장담했다.

 

 

*

 

 

솔로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의 저녁은 대부분 달콤한 섹스로 채워져있었고 그 행위에 모든걸 쏟아내고 난 다음에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몸을 껴안고 감은 두 눈을 뜨면 아침이었었다. 그의 완벽한 저녁 계획덕분에 그는 악몽을 꿀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부터 완벽한 저녁계획이 좀처럼 실행하기를 꺼려한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실행의 의욕은 줄어들었고 그로인해 솔로는 저녁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솔로의 저녁은 완벽한 저녁에서 멋진 저녁으로 변경되었다. 그의 멋진 저녁은 그의 취향에 맞는 직접 만든 음식과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촛대가 올려진 테이블에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노래를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것이다. 하지만 그 멋진 저녁도 단 4일만에 끝이 났다. 솔로는 앞치마를 두르고서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의 호칭을 말했다.

 

"페릴"

 

그는 솔로의 목소리가 약간 들떠있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카우보이"

 

솔로는 뒤돌아 부엌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지."

 

솔로의 목소리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히 말했다. 예고없는 그의 등장에 솔로는 기쁨을 감추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일리야는 바로 자리에 앉지않고 솔로의 넓다른 등과 테이블,그리고 의자를 한번 바라보서는 손에 쥔 커다란 검은 가방을 조심스레 바닥에 두고서는 의자로 걸어갔다.솔로는 솥에 만들고있던 토마토스프에 불을 줄이고 냉장고에 넣어둔 남은 토마토를 꺼냈다. 장을 볼때 평소보다 좀 더 양을 더 담았는데 지금을 위해서였는가 혼자 생각하고선 조심스레 미소지었다. 칼이 도마를 일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자신의 심장소리와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때 일리야가 말했다.

 

"더이상 그녀와 같은 방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 솔로는 그녀가 누군지 당연히 알고있었다. "웨이벌리가?"

 

"그가 아니라면 누가하겠어?"

 

일리야는 뭔가 참는듯이 말하고서는 주먹을 쥐었다. 솔로는 자른 토마토를 솥에 넣고서는 소금을 붓고 후추를 넣었다. 거칠어진 나무수저로 한스푼 떠서 맛을 보곤 입맛을 다셨다.

 

"너와 같은 방을 쓰라더군."

 

올리브유를 넣고 양파를 잘라 다시 넣었다. 그래도 맛이 부족했다. 뭘 덜넣은건지 솔로는 고민했다.

 

"카우보이." 솔로는 상체를 그를 향해 살짝 틀어 바라보았다. "너가 한건가?"

 

솔로는 그가 무엇을 물어보는건지 이해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그에게 향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는 이미 알고있다는것도 이해했다. 일리야는 그의 고국이나 일했던 장소에서 키워온 감각으로 깨달았을것이다. 그의 삶은 항상 어떠한 일에서도 빠른것을 요구했었을테니 그러한 감각을 어느 누구보다 먼저 배웠을테지.솔로는 자신이 그가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서는 만들고 있던 붉디 붉은 스프를 등지고 자신의 양 팔을 잡고선 일리야를 바라보고섰다.

 

"아니.난 웨이벌리에게 부탁하지않았어.일리야."

 

솔로가 말했다.

 

"내가 아무리 널 사랑한다고 해도 말이지."

 

토마토스프는 곧 넘칠듯이 힘차게 끓었다.

 

"넘치겠군." 일리야의 푸른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뭔가 빠졌어." 솔로는 시선은 여전히 일리야에게 향해있는 상태로 뒤로 고개를 까닥이며 스프를 가르켰다. 일리야는 부드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솔로의 앞에 섰다. 나무수저를 들고 솔로 등 뒤로 넘어가선 솔로를 바라보면서 스프를 맛보았다. 입술에 스프가 살짝 묻은것을 솔로는 놓치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을 뻗어 입술에 묻은 스프를 닦곤 자신이 핥아먹었다. 일리야는 인상을 찡그렸다.

 

"딜이 빠졌군. 카우보이."

 

일리야는 수저를 솔로의 앞으로 내밀었고 솔로가 수저를 받자 다시 일어냈을때를 재현하듯이 다시 부드럽게 자리에 앉았다. 솔로는 그저 입술로 호선을 그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씩 웃었다. 그가 아무리 자제하려해도 그의 감정은 그걸 원치 않았다. 솔로는 뒤돌아 찬장을 열어 유리병안의 딜을 살짝 털어넣었다. 곧 스프는 솔로가 원하던 맛을 찾았다. 스프를 하얀 접시 위에 담고선 일리야에게 먼저 건내고 자신의 것을 테이블 위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맡은 편에 앉아있던 일리야는 아무런 말도 없이 스푼에 토마토 스프를 담아 조심스레 먹었다. 솔로는 그의 입이 스프를 식도로 넘길때까지 자신의 앞에 있는 스프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 일리야가 스프를 삼키고 솔로를 바라보자 솔로는 알수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한걸음 다가와 막 사랑에 빠지려던 참이라는 것을.

 

 

*

 

 

솔로와 일리야는 테이블을 가운데두고 마주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체스는 이미 게임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은 없었다. 솔로는 테이블에 놓였던 자신의 와인잔을 들고 굉장히 집중하고 있는 일리야를 관찰했다. 그의 순서로 고운 미간이 좁혀져 주름이 가있었다. 함께한 첫 식사 이후로 일리야는 솔로가 그에게 향해있는 사랑따위 모르는 남자처럼 행동했다. 그게 그저 그의 위장인건지 아니면 스프가 식은것처럼 그의 생각도 사라진것인지 솔로로써는 알수가 없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생각을 알아내려 노력하지 않았다. 저번에 보였던 그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라는거는 정확했으니 그것으로 일단 매마른 감정에 뿌려진 비처럼 촉촉해진것만으로도 버틸만하다고 판단했기때문이었다.

 

그 뒤로 함께 지내게 된 룸메이트의 모습은 부족한 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다만 경계의 빈도라던가 비꼬는것을 조금 더 자주 듣게 된것에는 피곤함을 느끼고있었지만은 말이다. 한모금을 넘기자 일리야가 비숍을 옮기고 솔로를 바라보았다. 솔로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체스판으로 몸을 기울였다. 일리야의 체스는 그의 힘을 쓰는 방식과 대조될정도로 유연하고 날카로웠다. 펜싱과도 같았다.아니, 겨울인가? 솔로는 눈만 일리야를 향해 힐끗 올려다봤다. 일리야의 눈과 마주치자 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솔로는 작게 웃으면서 나이트를 옮겼다. 3수뒤면 자신이 체크메이트를 외칠수 있을것이다. 승리의 도취감을 미리 맛보면서 다시 등을 쇼파에 묻히고는 와인잔을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재즈가수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따라서 솔로도 조용히 흥얼거렸다.

 

Love is funny, or it's sad. or it's quiet,or it's mad. it's a good thing or it's bad.

(사랑은 우습건, 슬프거나,조용하거나,미쳤어요. 좋은것이거나 나쁘거나)

but beautiful...

(그렇지만 아름답죠)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푸른 색 눈이 솔로를 똑바로 향해 있었다. 트럼펫소리가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솔로는 그 순간 보았다. 그는 사랑을 하지 않는 남자로 위장하고 있었던것을. 하지만 그의 푸른 눈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이었다. 오 멍청하고 미련한 나폴레옹 솔로. 그는 계속 저렇게 바라보고 있었어. 기다렸던 걸지도 몰라. 근데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하다니. 솔로는 개비가 일리야의 두 눈동자 속에 사랑을 감추는 저주로 자신에게 복수했다고 믿었다. 개비는 대단한 여인이었다. 솔로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일리야의 흰뺨에 손바닥을 감싸곤 매마른 입술에 자신을 담았다. 귓가로 유리잔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입술을 떼고 눈을 뜨자 일리야의 눈을 더 가까이서 감상할수 있었다. 다시 솔로는 자신의 멍청함을 통탄했다.

 

"키스를 원했다고 생각했어." 일리야가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데 페릴,하지만 너의 '키스'는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을뿐이야." 솔로가 말했다.

 

맞닿은 손바닥과 코가 녹아내릴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입술이 다시 맞닿았을때 마치 재즈가수가 이 모든 상황을 알고있었다는듯 노래 불렀다.

 

and that would be but beautiful I know.

(그리고 그렇게 되겠죠. 그러나 아름다운 것이란걸 난 알아요.)

 

 

*

 


그날은 일리야가 임무로 저녁에 혼자 나가게 되어 솔로 혼자 방에 있게되었다. 왠만하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어쩐일인지 궁금해 웨이벌리에게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이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즐겨도 좋을거 같았다. 일리야랑 함께 있는게 싫은건 아니지만은. 그리고 무엇보다 웨이벌리에게 왜 일리야만 간건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눈치 빠른 그 늙은 너구리의 질문이 많아질거 같아서 그만두는게 더 나았다. 그걸 일일이 받아주기엔 솔로의 인내심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솔로는 너무 간만에 혼자 있는 상황이다보니 뭘 할지 고민하다가 책을 읽어나 신문을 읽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히고는 테이블쪽으로 다가갔다. 신문에 손에 닿을 때쯔음 호텔 방의 고급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전화기가 알람을 울렸다. 솔로는 방향을 바꿔 수화기를 잡아들었다.

 

“나폴레옹 솔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웨이벌리도 개비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시죠. 갑자기 전화라니…. 좋은 소식은 아닌가보군요.”

“…슬슬 U.N.C.L.E 과의 관계를 정리해야할때가 온거 같다는 지시가 내려왔네.”

 

빌어먹을 CIA…. 솔로는 자신의 “직속상관”에 대해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그들은 마치 솔로가 한창 평화로움을 느낄때마다 끼어들어서 그 모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솔로는 그런 상황들이 몇번 반복되다보니 익숙해지긴했으나 한동안 이런 일이 없었던것만큼 짜증과 분노가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골치가 아파져와서 솔로는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그런 솔로의 행동을 눈으로 직접 보고있었던건지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꺼냈다.

 

“U.N.C.L.E을 그냥 끊을수 없다는건 자네도 잘 알테지. 그들은 자네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기때문에 자네를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을거라는걸.”

“묘한 칭찬이군요.” 솔로는 씁쓸하게 웃었다.

 

“U.N.C.L.E과의 관계를 깨야 자네를 포기하겠지.”

“그래서?”

“…일리야 쿠리야킨을 살해하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매우 무미건조하게 말했지만 솔로는 그 말이 마치 사형 선고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솔로 머리의 피가 바싹 말라버린 느낌에 약간 목소리를 떨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지 않습니까? 그냥… 그냥 제가 배신해서 임무 실패로 되면…!!”

“아니. 그건 일시적인 일이 될걸세. 그들은 자네를 용서하겠지. 자네를 신뢰하니까. 자네의 신상정보를 알고있는 개비는 영국으로 되돌아가도 우리에게 큰 타격은 없지만 일리야가 본국로 돌아갈경우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 그것만은 막아야 하네.”

“…….”

“우리 쪽에서 특별히 지시 없이 일을 진행할것이니 자연스럽게 합류하면 되네.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접촉할수 있도록 연락주게. 그럼.”

 

-뚜뚜… 


‘젠장'

 

솔로는 침통한 기분으로 마치 펼쳐놓은 책을 간단하게 훑어보며 넘기는 일처럼 그의 일생을 되돌아봤다. 그의 일생은 여태껏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변화하거나 강물이 그저 흘러가는것처럼 냅둬버리는 일생을 살아왔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일생에 고민을 할만한 일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 사건과 선택이 발생하더라도 결론은 항상 정해져있기때문에 고민이라는 일이 그의 일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그의 조용한 호텔룸으로 걸려온 전화 하나로 그는 일생일대의 커다란 뜀틀이 생겨나 버린것이다. 뜀틀의 결론은 하나다. 뛰어서 넘으면 된다는것. 그에게 간단한 일이다. 그는 그 뜀틀의 뒤로 양의 가죽을 얻어갈수 있었지만 뛰어넘고 싶지 않았다.

 

 

*

 


어두운 방 안에서 솔로는 자신의 옆자리에 곤히 자고있는 일리야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두 눈의 속눈썹이 내려앉은 걸 바라보다가 슬쩍 손가락등으로 매만져도 일리야는 미동도 없었다. 일리야를 거의 한계에 부칠 정도로 몰아붙인 섹스를 했다. 섹스 하는 내내 일리야는 한 손으로는 시트를 부여잡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솔로를 밀어내려 애썼다. 솔로에게 닿은 손이 덜덜 떠는것을 느끼며 솔로는 일리야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계속해서 자극시켰다. 일리야는 제발이라고 울먹으면서 차마 솔로의 행동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내내 신음소리를 낼수밖에 없었다. 섹스가 거의 끝나갈때에는 일리야는 기절하다싶이 수마에 빠져들었다. 솔로는 눈가가 빨개진걸 엄지로 쓸고서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CIA에서 연락이 온지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그들은 조용했지만 그만큼 솔로는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한달 동안 솔로는 일리야와의 잠자리에서 매번 이런식으로 섹스를 했고 평소에는 간간히 일리야와 접촉을 멈추지 않았다. 일리야는 처음에는 그만두라고 화를 냈지만 포기한것인지 길들여진것인지 2주 뒤부터는 그저 솔로가 하는대로 냅두었다. 그게 솔로에게는 더욱 행동을 부추켜 행동을 멈출수 없게했다.

 

한번은 일리야에게 둘이서 도망을 간다면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다. 일리야는 내가 왜 너랑 도망을 가야하는지 되물었다. 솔로는 솔직하지 못하다고 대답했었다. 일리야가 콧방귀를 뀌었지만 솔로는 집요하게 계속 물었고 겨우 답변을 들었다. 싱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일리야의 과거를 떠올리게 해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 자리에 내 자리를 남겨줄수있나?” 솔로가 물었다. “…와인을 들고온다면 생각해보지.” 그새 입맛도 솔로에게 길들여졌다. 솔로는 충족감을 느끼며 일리야에게 바로 키스했다. 당연히 일리야는 말렸지만은.

 

솔로는 그때 했던 대화를 떠올리곤 자고있는 일리야의 입술에 다시 가볍게 키스하고 눈을 감았다. 이 유해기간이 한편으로 가슴을 옥죄어오지만 그 기간동안 일리야가 보여준 태도에 행복하기만 했다. 거의 정신을 잃어갈때쯔음 솔로는 바라고 또 바랬다. 일리야와의 도피를 준비하는 동안 그들이 행동하지 않기를.

 

 

*

 

 

“나폴레옹 솔로!!!”

 

갑자기 문을 세게 두드리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솔로는 놀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를 확인하니 있어야할 일리야가 없자 아침부터 어딜간건지 제대로 고민도 못한체 서둘러 가운을 입고 계속 소리치고 있는 문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문은 열자 개비가 매우 화난 얼굴로 솔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몇번을 두드렸는데!!”

 

솔로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개비가 겨우 이런걸로 화를 낼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았기에 의아해했다. 개비는 솔로에게 지금이 몇시인줄 아냐고 물었다. 고개를 돌려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전 내내 잠을 잔것에 대해 놀랬다.

 

“오늘 정오 쯤에 함께 식사하자고 한건 그쪽이거든요? 근데 소식도 없고!”

“정말 미안해요. 나도 이렇게 깊게 잠든적이 흔하지 않아서….”

 

개비는 입을 꾹 다물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솔로를 노려봤다. 솔로는 개비와의 약속도 사실 잊어먹고 있었기에 다시한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고개를 펙 돌리니 높이 올려 묶은 검정색 머리가 솔로를 향해 흔들렸다. 미워할수 없는 행동이었다. 개비가 고개를 두리번 거리면서 솔로에게 일리야는 어디있는지 물었다. 솔로는 어깨를 들었다 놓으면서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일리야가 어디로 간지 모른다뇨?”

“알잖아요. 나도 방금 일어났는걸….”

“…말도 없이 나가다니….워낙에 조심성 많아서 잘 안나가잖아요. 이상하네….”

 

솔로는 그제서야 개비에게조차 얼굴을 내밀고 가지 않은 일리야를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웨이벌리조차 모른다며 개비가 마저 말하자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이 결국 행동을 시작한것이다. 이제 솔로에게 남은건 오직 한가지 선택뿐이다. 그들은 솔로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것이다. 왜 좀더 빨리 일리야에게 어디로 갈것인지 물어보지 못한건지….솔로는 후회했다. 이젠 모든 책임을 져야할때가 왔다.

 

솔로의 표정이 점점 안좋아지자 개비는 솔로에게 아는게 있는건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로는 개비에게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네, 잘알고있지요. 그를 죽이려는 CIA가 그를 납치한겁니다.’ 라고? 그게 아니라면 ‘하하 글쎄요. 잠깐 공원 산책을 나간거 아닐까요? 자유를 만끽하려고요.’ 라고 농담을? 당연히 개비는 눈치가 빠르니 그 말들의 진위를 파악할것이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게 차라리 나을수도 있다.

 

“개비. 내가 지금 하는 말 절대 웨이벌리에게 말하지마세요.”

“솔로?”

“일리야가 어디로 갔는지 알거 같아요. 하지만 절대. 그 누구도 쫓아와선 안되요.”

“…….”

“그리고…무슨 일이 일어나도…날 용서하지 말아요.”

“…무슨소리예요?”

 

개비의 가는 두 손이 본인의 팔을 감싸안았다. 개비의 이 뒤로 나올 솔로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방어적인 태도에 솔로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와의 마지막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음 더 좋았을거라고 상상했다.

 

 

*

 

 

솔로의 눈 앞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는 양복을 더럽히는걸 싫어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걸 좋아했다. 근데 지금 그의 모습은 그런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목까지 감싸주는 검정색 폴라티와 검정색 바지는 본인의 피와 타인의 피가 범벅이 되었으며 바닥에 구르면서 생긴 상체기와 더러운 무언인가들로 잔뜩 어지러워져있었다. 하지만 헤진걸 제외하고서는 잘 인지되지 않았다. 검정이란 그런것이니까. 얼굴에 묻은것까지 가릴순 없었지만 솔로는 개의치 않아했다. 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복도끝에 자신이 죽인 시체와 문 앞 자신의 발치에 닿을락말락 누워있는 시체. 그리고 이 건물 안에서 여길 오는 길에 바닥에 드러누운 시체들. 모두 다 CIA 였다. 아마 이미 그쪽에서 솔로에 대한 보고를 바로주고받았을것이고 곧 이곳으로 더 지원군이 올것이다. 물론 그들은 눈에 띄지 않을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도 CIA인걸 숨기고 한것이기때문에 괜히 더몰라왔다간 이들도 정체가 발각되는 일이기에 그러지 않을것이다.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솔로는 이 갈곳없는 분노를 풀 곳이 딱히 없었다.

 

문 앞에서 솔로는 긴장하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총구를 내리지 않은체  눈 앞에 고정시키고서는 안으로 들어가니 의자에 알몸으로 묶인 일리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상태가 어떤지 확인이 안되었지만 적어도 그의 몸 이곳저곳에 난 상처들을 보고서는 꽤나 위험한 상황까지 도달해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주위를 겨누면서 일리야에게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름을 불렀다.

 

“페릴.정신차려.” 그 목소리에 일리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머리쪽을 세게 맞은건지 피가 좀 흘러 눈쪽으로 들어가 눈이 빨갛게 되어있었고 입술은 터져서 부어있었다. 이것도 ‘계획의 일부’ 라고 하는건지 솔로는 화가 났다.

 

“솔로….” 일리야가 솔로의 이름을 간신히 붙잡은 생명줄처럼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기도해 솔로는 급하게 일리야에게로 뛰어갔다. 솔로가 총집에다 총을 넣고서는 일리야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올렸다. 일리야의 상태를 이리저리 보면서 크게 아픈데는 현재 없냐고 물으니 일리야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줄을 풀지 않은체 상태를 보던 솔로의 몸으로 일리야가 머리를 기대었다. 그 행동에 솔로는 살펴보던 행동을 멈추었다. 말없이 눈을 감고 자신에게 기댄 일리야의 머리를 조심히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자네가…날 구하러 올줄…알았어…. 기다렸다….”

 

거친 목소리로 힘들게 일리야가 말을 이어갔다. 솔로는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기댈 날이 오게 될줄 몰랐다. 조심스레 어루만지던 손으로 일리야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끔 올렸다. 긴 속눈썹이 들어올려지면서 맑은색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생각이 이어졌다.  이대로 일리야와 도망을 간다면…. 솔로는 작전대로 CIA를 죽이는 ‘척’만 하고 이곳까지 도달했어야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거였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았고 화가 난 그들은 어떻게해서든지 일리야와 솔로를 찾아내고 말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일뿐이지 결고 포기할 일이 아니라는걸 안다. 그러다가 이렇게 다시 일리야가 잡혀버린다면 그들은 지체없이 일리야를 죽일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자신들의 정보가 세어나가지 않게 일리야를 죽여버린 것에 환호를 할것이 뻔했다. 지금은 당장 피할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정해져있었다. 희망적인 미래도 있을것이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아슬한 일상도 없고 피를 볼일도 없고 총구가 사람을 향할 일도 없는 미래가. 하지만 그것은 ‘희망’일뿐이었다.

 

일리야의 눈은 자신을 맑게 비추고 있었다. 솔로는 울듯이 미소를 지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와 입술에 키스했다.

 

 

*

 

 

개비는 자신의 기준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절대 말을 듣지 않은 성격이었다. 솔로와의 대화를 곱씹어봐도 자신이 가만히 있기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해결할 일이니 그저 용서를 구하지 말아달라’ 라고 했지만 그 혼자 하기에는 같은 동료인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에 자신에게 지급된-정식으로 지급되진 않았으나 일리야가 그녀에게 신분에 위험이 생기면 쓰라고 자신의 것중 하나를 받았다.- 총을 들고 솔로의 뒤를 조심스럽게 밟았다. 솔로가 들어간 건물에서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서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솔로에게 들키지 않은는 선에서 뒤에 남아 있는 자가 있으면 바로 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에서 멀어질수록 쓰러진 사람의 수만 늘어갔으면 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은것 같았다. 그녀는 새삼 솔로의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몇 없기도 했지만서도 이렇게 처리할줄이야 몰랐었다. 그리고 시체들을 따라 이동하다가 어디선가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개비는 솔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소리가 난 곳까지 서둘러 달려갔다. 숨이 차올라 목이 타들어가듯이 아플때쯤 반쯤 열려있는 방 문 앞에 도착했다. 철문을 힘차게 밀면서 총구를 앞으로 겨누었다.

 

“솔로!!! 괜찮ㅇ…”

 

개비는 놀라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총을 내렸다. 솔로가 묶여있는 일리야를 그대로 감싸안고 있었다. 안겨있는 일리야의 머리가 솔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지만 마치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생기가 없었다. 방안에는 솔로와 일리야 밖에 없었고 총소리는 방금 전에 났었다. 그리고 일리야는…. 개비는 자신이 생각한 결과가 틀리기를 바랬다. 개비는 솔로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체 솔로를 바라보고있었고 솔로는 그저 말없이 일리야를 더 강하게 감싸 안았다. 그 방안에서는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

 


기차가 가는 방향대로 길게 연기가 만들어지면서 그 길을 따라왔다. 그 기차 안에서 솔로는 창밖은 한참 바라보기만 했다. 시선끝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차가 정차한 곳에서 내린 솔로는 그 답지 않은 낡은 차를 구매하고서는 다시 한참을 이동했다. 울창한 숲이 시작되는 곳에서 차를 세운 솔로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한번 바라본 뒤 그 주위에 사람이 사는 집에 문을 두드렸다. 아직 정정해보이는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멜빵바지는 낡고 거뭇하게 무엇인가 묻어있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아보였다. 솔로는 말 없이 그에게 차키를 건냈고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키를 준 솔로를 쳐다보았다.

 

“차는 낡았지만 엔진은 상태가 좋습니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쓸수 있으실 거예요.”

“…5년이라니 과하구만.”

 

솔로는 그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슬쩍 내림으로 인사를 대신하고서는 자리를 떴다. 노인은 솔로가 숲 속으로 들어가 소리가 안들릴때쯔음 차를 한번 보고 차키를 주머니에 넣고서는 다시 들어갔다. 희한한 손님이었지만 사는 세월동안 그런 사람 한둘 본게 아니라 놀랍지도 않았다.

 

 

*

 

 

숲은 인적이 드물어 제대로 된 길이 나있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사람이 다닌 흔적은 남아있어서 그 곳으로 쉬지 않고 걸어갔다. 슬슬 잡초와 나무가 주황색으로 물들어갈때쯔음 노을빛이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호수와 그 옆의 오두막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호수로 반사되는 빛이 눈부셔서 솔로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오두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 장작으로 쓸만한 나무가 있는지 살펴보고선 불쏘시개로 쓸 얇고 마른 나뭇가지들도 주어다가 오두막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온통 먼지 투성이에 가구들은 죄다 천으로 덮어두어 음산하기까지 했지만 곧 그런 감성은 접어두고 주어온 나무들을 두고서는 온 집 안의 창문을 열어두었다. 양 어깨에 매어진 짐도 내려두고선 가구들을 감싸고 있던 천들을 걷어내면서 천으로 묻어있는 먼지들을 슬슬 쓸어내리고 창문에 터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정도 정리 된걸 보고나서는 슬슬 해가 져가는걸 확인하고선 벽난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불이 어느정도 붙는걸 확인하고서는 가방에 있었던 와인과 컵을 꺼내 잔에 따르고 일인 쇼파와 간이의자를 벽난로 근처로 가져와 발을 올리고 앉았다. 어느 정도 병에 있는 와인을 다 비우고서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꺼내기 시작했다. 옷은 상하의 다 갖춰져 잇었으며 자켓과 모자도 갖춰져있었다. 옷을 다 꺼낸 솔로는 마지막으로 신발도 꺼내들고서는 자리로 돌아갔다. 옷을 사람의 위치에 맞춰서 차분히 진열해놓고서는 마지막으로 신발을 바지의 끝에 맞게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솔로는 벽난로를 중심으로 옷이 놓인 의자 반대편에 또 다른 일인 쇼파를 끌고와서 앉았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불을 잠시 바로보고서는 자신의 왼쪽에 사람 없이 옷만 놓여진 쇼파를 쳐다봤다. 손을 뻗어 쇼파 손잡이 쪽에 놓인 자켓의 소매 부분을 슬슬 쓸어올리다가 이내 눈 앞이 물결이 쳤다. 솔로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오열했다. 주인 없는 자켓을 끌어안자 모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일리야……일리야……. 일리야…….”

 

 

*

 

 

노인은 숲 속안에서 자신의 힘을 다해서 뛰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어제 받은 차를 생각하면서 그 차를 여기까지 못끌고 온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거의 숲을 빠져나갈때쯤에 산 아래에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모여있었고 다들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급하게 찾아온 소방관에서 숨을 헐떡이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가르켰다.

 

“저곳에 사람이 어제 올라갔어요!! 저 산속 오두막에 사람이 산다구요!”

 

 

*

 

 

“내가 모든 사슬을 다 끊어버리고 자유를 찾게 된다면 숲 속 호수옆에 2층으로 된 오두막에서 살거야. 바로 옆이 호수이니 물을 길러다가 마시기도 편할거고 배를 타고 호수의 중간쯤에 가면 낚시를 할수도 있겠지. 그거 아나? 나의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데리고 가끔 낚시를 가서는 낚은 생선을 바로 맛있게 굽는 방법을 알려주셨지. 러시아 식으로 말이야. 낚시를 하고 와서는 집 앞에서 불을 지펴서 고기를 굽고 불이 꺼지기 전까지 먹고 난 다음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잘 채비를 하겠지.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낡아 빠진 스프링에 누워서 잠을 청할거야. 아침 해가 뜨고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얼굴에 닿으면 다시 하루를 시작하지. 그런 내 삶의 마지막은 그 오두막과 함께였음 좋겠어. 나의 집이자 나의 관이었음 좋겠어.”

 

 

*

 

 

개인 전용 비행기 안에는 개비와 웨이벌리가 마주보고 앉아서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있는 곳은 이제 영국 상공일 것이다. 개비는 창밖을 보면서 그렇게 가늠했다. 웨이벌리가 들고 있던 지루한 서류를 어느정도 다 읽어갈때 쯤이었다.

 

“그거 아세요?”

“무엇을 말인가?”

“양은 털을 깎을 때나 도축할때 주인이 아니면 겁을 너무 먹어서 힘들데요. 그 반대로 주인의 대한 믿음은 엄청나서 자기 목을 딸때에도 얌전히 안겨있는데요. 도축할때 주인 품에 안겨서 칼이 목에 닿아 잘려나가는 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인만 쳐다본다고 하네요. 그 양의 믿음을 얻을때까지 주인도 엄청 노력하구요. 참 순수하지 않나요?”

“…. 다른 말로는 미련하다고 할수도 있지.”

 

그 말을 끝으로 웨이벌리는 서류를 마저 읽어내려가고 있었고 개비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서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입 안에 쓴맛이 돌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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